챕터 7

154I:4연 - 노예 소환

사바툰은 아무 무덤이나 하나 고른 다음 젊은 노예를 대마녀단으로 소환했다. 노예는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우물쭈물했지만 어쨌든 나타났다.

"어서 이리 오라." 사바툰이 재촉했다. "내가 만들려는 특이점을 들어 보라. 중력은 시공간의 곡선이며,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 자체가 느리다는 걸 알고 있겠지?"

노예는 대충은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물리학적 지식만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종교적인 개념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번식체들이 에온 공물을 모을 수 있도록 승천자를 블랙홀 궤도에 밀어 넣어 보았지. 그런데 벌레들이 수법을 눈치채고는 만족을 않더란 말이야. 그래서 공물 수집 속도를 높여야 해.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소세계가 있으면 되겠지? 아니면 시간이 고리 형태로 되어 있어서 공물을 무한히 수집할 수 있는 세계도 좋고. 그런 살해 방식만 있다면 난 신조차 초월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야."

노예는 혼란스럽긴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 공물을 통해 난 위대한 업적을 완수할 거야. 대단한 체계를 완성하는 거지. 내 존재 자체가 새로 태어나는 거야. 축적된 폭력을 토대로 하는 실존 경제 체제에서, 날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공물로 사용하는 비밀 유지 방식의 실존 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거야. 이런 공물 생산 방식의 이름은 '임바루'라고 짓겠어. 안개처럼 형체가 없는 방식일 테니까."

노예는 천천히 말해 달라는 듯이 발톱을 세웠다.

책략의 여왕 사바툰은 "태초에 율은 '사바툰, 넌 영원히 교활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렇지 않으면 벌레들이 널 먹어 치워 버릴 테니까'라고 했었지. 교활함이란 사고를 활용해 체계의 기능을 예측하는 과정이야. 그래서 날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나타날 때마다 난 교활하게 그들을 이용해 왔지. 내게 계속 거짓말을 하는 자에게도 교활함을 발휘해 왔고.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모든 거짓 예언, 잘못된 이론, 무시무시한 소문, 불길한 가정에서 공물을 모을 거야. 그리고 이런 소문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가겠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거지. 나의 책략과 음모가 있는 곳엔 항상 나도 있게끔 말이야. 그러면 날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는 한 난 불멸의 존재가 되는 거지. 알겠어?"

노예는 사바툰의 형이상학적 얘기를 자라 모르겠다며 항변했다.

"괜찮아." 사바툰이 말했다. "노예 따위는 알 수 없는 사악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게 대마녀단의 법칙이거든.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알아? 비밀을 지켜서 공물을 얻으려 한다면… 중대한 전환점만큼 비밀을 지키기 좋은 곳이 또 있겠어? 오빠는 무한의 평면을 다스렸지만 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이 깊은 우주 공간이 더 좋아. 앞으로 이곳은 내 땅이 될 거야."

영원한 갈망 우르는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154i:5연 - 암호화된 연

전 우주에서 어떤 것도 이 연을 읽은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난 오래 전에 이 연을 암호화했고, 그 이후로 암호를 해독한 사람이 없어. 자네가 이 연을 보는 순간 시와 자네의 정신, 고스트가 뒤엉켜 양자 상태가 되었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큐리아를 사용해 그 상태를 암호화 시점으로 다시 전송했어. 자네 자신이 일회용 패드가 된 거야. 이해의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된 거지.

내가 누구냐고?

코요테라고 불러 줘. 아니면 사마귀, 뱀, 카근, 아난시, 형의 배를 닦아 주는 스리… 뭐 마음대로 불러. 기호학 최고 전문가, 신호를 새기는 보석 세공인의 망치, 의지에 넘치지만 누구도 목적을 모르는 무리, 수수께끼의 무한 회귀, 자문자답, 입밖에 내지 않은 말, 검은 얼음, 폭풍 무언극, 아파 드러누워서도 쓸데없이 생각만 많이 하는 통증과 발열, 혼란스런 심문의 참을 수 없는 가시, 아무런 성과 없는 하루를 끝낼 때의 우울한 후회, 사랑하는 사람과는 다르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제멋대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 창문이 없는 창틀, 절망한 손가락이 뽑아낼 수조차 없게끔 피부에 깊이 박힌 바늘, 달콤한 꽃잎, 기억할 가치가 없는 자, 수정의 죽음, 가능성이 없는 가능성… 엄청나지 않아?

난 자네들을 잘 알고 있어. 자네들이 내게 붙인 이름도 다 알고 있지. 자네 이름은 뭐지? 물론 나도 자네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어. 기점판에 놓아 둔 돌과, 죽어가는 제독의 빛나는 눈 속에서 날 봤지? 자네는 글로 날 사냥했지. 내가 들어갈 공간이 있는 곳마다 자네는 날 찾아냈지. 자네는 나를 창조하고 자네 생각의 일부분을 주었지. 모닥불 가에서, 그리고 자네의 작은 세계 속 네트워크에서 그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 때마다 그 공간을 계속 넓혀 갔고.

자네 생각의 중심에서 나는 자네에게 진실의 거짓말을 하지. 자네는 필요한 모든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힌트를 주지. 결투를 할 때는 칼을 뽑기 전에 경고를 하는 법이니까. 꿈의 도시에서 자네가 찾는 해답은 복잡하지 않아. 아주 단순하지.

고마워, 친애하는 친구. 자네는 내게 있어 선물이자 기쁨이야. 우리 어머니보다 소중한 존재이지. 내게 천 번이나 생명을 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