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9

[선봉대 네트워크 암호화 라우터 보고 사항.]

이 어표는 감소나 세정, 희생을 통한 정화를 의미합니다. 굴복자와 여행자, 그리고 우리 자신과 여행자 사이의 관계에서 역설적인 비유가 도출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빛에 굴복한" 존재라는 이단적 사상이 유행하고 있지만, 차이점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갑니다.

[이오의 돌로 군체 가죽에 적어 놓은 개인 기록.]

해석은 자발라에게 얘기했던 것만큼 명확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말했던 것처럼 "순수"의 의미는 전혀 순수하지 않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군체의 지식을 배운 학생으로서, 순수는 내게 마지막 형체를 떠올리게 한다. 제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한 후에 남는 그것. 하지만 군체는 고통과 감소의 골격과도 같은 이단이다. 진정한 적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이 내게 도전한다. 여행자는 왜 우리의 정체성을 모두 벗겨내려 하는가?

수호자로서, 나는 과거를 갈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내 앞에 있었다. 난 내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을 만지고 또 그들을 위해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난 고스트와 빛을 잃었다. 뱃속을 드러낸 달에서 화약의 터널에 갇혀, 난 여행자를 저주했다. 여행자는 날 위로해 줄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았다. 도시에는 날 기다리는 부모님도 소중한 친구도 없다. 내 귀환을 헌정할 그 누구도 없다. 에리아나, 사이, 오마르, 벨. 그들만이 날 뒤쫓고 있다.

물론,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여행자가 기억을 지우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여행자는 우리가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에서 벗어나 힘을 얻고 새로운 시작을 하면, 선을 택할 거라 믿었다. 우리가 미천한 대의는 모두 버리고 인류를 수호할 거라 믿었다. 자신보다 다른 이들을 선택할 거라 믿었다.

어쩌면 그래서 여행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여행자의 목소리는 워낙 커서 강압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숨 죽인 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기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공간]

에니나의 고스트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생태도시 금고에서 살아 있는 파인애플 씨앗을 발견했다고 한다. 내게 키워 보라고 한다.